평창 오대산 상원사
세조와 문수동자의 얘기가 전해오는 오대산 상원사,
한암큰스님의 수행처로도 유명하고,
자장율사와 관련된 5대 적멸보궁중 한 곳이 이곳 중대에 위치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보 제 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평창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象)
-문화재청 자료중에서-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다.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대좌(臺座)는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예배의 대상으로서 조상(彫像)이 된 동자상(童子像)으로는 국내 유일의 유물(遺物)이며, 동자상(童子像) 조상(彫像)의 유래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우견편단(右肩偏袒)에 영락(瓔珞)을 늘어뜨린 보살형(菩薩型) 양식인데, 보살상과 다른 것은 보관(寶冠) 대신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 동자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다. 납의(衲衣)로 허리띠를 질끈 묶어 동자의 천진성(天眞性)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며, 볼과 입가에서 동자의 천진성이 잘 나타나 있다.
대좌(臺座)는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동자상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하여 광배(光背)도 마련하지 않았다. 수인(手印)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하품하생인(下品下生印)과 같이 하고 있다.
이 동자상은 고려불상(高麗佛像)의 양식에서 조선(朝鮮) 전기(前期) 양식으로 전개되는 양식적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조선(朝鮮) 전기 조각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오대산(五臺山)은 신라(新羅)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중국(中國)의 오대산문수신앙(五臺山文殊信仰)을 받아들인 이래 문수도량(文殊道場)으로 유명하다.
이같은 전통적인 문수신앙이 조선조(朝鮮朝) 세조(世祖)의 문수신앙을 낳게 하고, 세조(世祖)의 문수신앙 체험이 동기가 되어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을 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과 전설(傳說)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국보 제 36호, 상원사 동종-
-문화재청 자료중에서-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음통(音筒)이 있는 종뉴(鍾뉴) 아래에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鍾身)이 연결된 형태인데,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감 있는 구조, 풍부한 양감(量感)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수법도 매우 사실적이다. 종신에 있는 상대(上帶)·하대(下帶), 네 곳에 있는 유곽(乳廓)의 문양은 모두 당초문(唐草紋)을 바탕으로 2∼4인의 작은 비천상(飛天像)이 있는 반원권문(半圓圈紋)이 새겨졌고, 종복(鍾腹)에 비천상과 교대로 있는 당좌(撞座)는 8엽(葉)의 단판연화문(單瓣蓮華紋)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비천상은 경쾌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으로 구름 위에서 천의(天衣) 자락을 흩날리며 공후와 생(笙)을 연주하고 있는데, 볼록한 두 뺨, 유연한 신체에 걸친 천의 등은 8세기 전반의 이상적(理想的) 사실풍(寫實風)의 불교조각(佛敎彫刻) 양식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상원사 종에 보이는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형, 상대·하대, 네 곳에 있는 유곽의 구조적인 특징은 한국종의 전형(典型)이 되어, 양식적인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의 모든 종에 계승된다.